고난주간, 부활절 묵상
-2019-

교회력(Christian Year)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발전되었습니다. 교회가 지켜 온 것 어느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매 절기마다 그 고유의 깊은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새로운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의 성탄절과 승리의 부활절은 강조하면서 고난과 자기희생의 고난주간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고난주간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승리와 기쁨은 모두 이 고난에의 동참과 그것의 극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어 특별한 회개의 날인 성회 수요일부터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성금요일을 절정으로 의미있는 예배와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으로,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신앙적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지냅니다. 고난 주간 동안 이 말씀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다시 기억함과 더불어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드려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새롭게 다짐하여 헌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32~38

제1언

[월요일]

예수님은 ‘해골’(골고다)이라는 곳에서 두 명의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던지신 첫마디는 ‘기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34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마저 끝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반면 관리와 군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 곧 그리스도라면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비웃었습니다. 사탄은 광야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줄곧 예수님이 자신을 살리는데 아들의 권능을 사용하도록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하신 대로(눅 22:42) 순종하셨고, 하나님은 아들의 철저한 순종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뜻을 이루어가셨습니다. 순종만이 생명의 길임을 몸소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충분한 능력이 있으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고난과 희생 덕분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감사하시는 하루가 됩시다.

[기도제목]

1.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늘 주님의 통치 아래 살게 하소서
2. 주님께서 보여주신 용서의 기도를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를 용서하게 하소서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39:43

제2언

[화요일]

십자가에 달린 한 죄수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렇다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자를 향해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느냐 우리는 스스로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그렇지 않지 않다. 어떻게 무죄한 사람을 조롱할 수 있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이 강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고, 동시에 믿음으로 예수님께 반응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예수님께서 장차 권세를 가지고 오실 때에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죄수가 간구한 것 이상으로 ‘오늘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습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만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함을 확신하십니까?

[기도제목]

1.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2. 오직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만으로 내 삶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보라 네 어미니라

요한복음 19:25~27

제3언

[수요일]

십자가의 주님은 사랑 안에서 거듭남으로 관계의 지평을 새롭게 넓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완전한 하나님이셨지만(요 1:1), 완전한 인성을 지니셨기에,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눈물로 바라보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하십니다(26).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어렵게 입술을 땝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자신의 사역초기 가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를 향해 여인이라 부른(요 2:4)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앞에서 다시 한 번 어머니를 향해 여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 3:15)는 원시 복음을 생각나게 하고, 그 말씀의 온전한 성취가 십자가 죽음 앞에 일어남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이종 사촌인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를 살피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출 20:12) 구약의 가르침을 성취함과 동시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자매요 형제’라는 자신의 말씀(막 3:31-35)을 적용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 사랑으로 새롭게 맺어주신 사랑의 관계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또 믿음의 가족들을 주의 사랑으로 온전히 섬기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에 있어 어떠한 고난도 압도적인 주의 사랑으로 인내하게 하소서
2. 십자가 사랑으로 새롭게 맺어주신 사랑의 관계를 감사하며 믿음의 가족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5~51

제4언

[목요일]

온 땅에 어둠이 임한지 세시간 후 제구시 쯤(오후 3시), 예수님께서는 크게 소리 질러말씀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잠시 동안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고, 분리 되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죄의 고통과 죄악의 형벌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까?”라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조롱을 받는 순간에도, 심지어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주님의 고백은 “지금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입니다”라는 전적인 신뢰의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해 전적 헌신과 신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성부와의 단절을 감내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2. 주님을 향한 전적 헌신과 전적 신뢰로 주님의 신실한 제자 되게 하소서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28~30

제5언

[금요일]

“내가 목마르다.” 이것은 시편(69:21)의 말씀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 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를 이루시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자기 중심적이지 않으셨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역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것을 이루시는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목마르다”라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조롱하며 신포도주를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댑니다. 그것을 받으신 예수님은 “다이루었다”고 하시며 숨을 거두십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한 행동조차 완전하게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함과 또 하나님의 계획의 모든 부분들이 완성되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자기의 완악함대로 행하지만,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은 세상의 계획과 방법을 뛰어 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섭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묵상하게 하소서
2.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격하게 하소서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4~49

제6언

[토요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소의 휘장 한 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몸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히10:19-22). 예수님은 마지막 한마디 기도를 남기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부르신 이름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33년의 생애를 살아가며 매 순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신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십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 역시도 주님과 같이 매 순간 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 앞에 모든 인생의 짐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권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2.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날마다 구원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위해 기도의 무릎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부활. 왕의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요한복음 19:38~42

제7언

[부활주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임을 숨겨왔던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후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목숨을 걸고 빌라도에게서 예수님의 시신을 받아왔고, 또 장례를 위해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습니다. 니고데모는 100리트라, 환산하면 약 32.7kg으로 제왕에게나 사용될 만큼 매우 많은 양의 향품을 가져와 장례를 치렀습니다. 두 사람이 준비한 장례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왕으로 죽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이들은 독수리 밥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만, 왕이신 예수님은 두 사람의 장례 절차로 인해 오히려 왕의 권위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변화’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장례를 준비했던 두 사람은 소극적인 신앙인이었지만, 목숨을 건 담대함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치름으로 확실한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부활의 아침, 귀하는 어떤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기도제목]

1.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왕이신 예수님을 위해 삶의 전부를 드리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2. 부활의 기쁨을 통해 나의 소극적인 신앙이 적극적인 신앙으로 변화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