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고난주간, 부활절 묵상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가상칠언1

예수님 십자가상의 첫마디는 용서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람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서 서서히 죽게 만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다른 말씀보다 먼저 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용서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용서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확실한 용서의 증거로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 용서의 범위와 내용은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거부하는 자들마저도 용서하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끝이 없는 용서의 폭을 경험할 따름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용서의 마음을 닮기 원하며, 우리 가운데 화해의 사랑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 적용
– 아직도 내 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모습이 남아있지는 않습니까?
– 먼저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 나의 용서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장 43절

가상칠언2

예수님께서 같이 십자가에 매달렸던 좌우편 강도 중 은혜를 구하였던 한 편 강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아서도 죽을죄를 지었고, 그래서 죽임을 당한 강도에게 예수님께서 천국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나중에 죽기 전에 예수님 믿고 천국가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자신의 수명을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죽을 죄인들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강도보다 더 악질적인 죄인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죽을 죄인이 아니라는 교만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죄인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천국을 만드셨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 적용
– 아직 내게 남아있어 악취를 풍기며 나를 사망으로 몰아가는 죄는 무엇입니까?
– 구원받은 강도같이 겸손하게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장 26, 27절

가상칠언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에게 연이어 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고통의 순간에, 정말 중요한 유언을 남겨야 할 순간에 마리아와 요한에게 하신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의미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식의 죽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것을 택하는 어머니들의 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 마음을 위로하는 위로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부분에 대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위로와 격려가 사람과 사람사이를 맺어줍니다. 진정한 위로와 격려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위로의 수준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를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 적용
– 비록 내 형편이 어렵더라도 진정으로 배려하고 위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위로하기보다 위로받기 원하는 내 욕심의 근원지는 어디입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장 46절

가상칠언4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절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모습은 더 이상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요 죽임을 당해 마땅한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버리시고 대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아무 관계도 없고 오히려 원수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버리시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자신의 양아들로 맞았습니다. 그 일화를 접한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사랑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근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 사랑의 깊이와 폭을 알기에 혈육을 잃은 슬픔을 넘어 원수를 양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 적용
– 독생자를 버리시고 대신 나를 택하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합시다.
– 아들을 대신하여 양자된 나는 아버지인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절 28절

가상칠언5

예수님은 머리에 찔린 가시관과 손과 발에 박힌 못으로 인해 많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한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빛은 보통 사람에게도 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는 육신의 수분부족으로 인한 목마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생수 한 사발을 드시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영원하신 예수님께서 3년여의 공생애 기간동안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말씀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도 육신적인 갈증만의 목마름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갈증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같은 충성된 자(잠25:13)만이 그 갈증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적용
– 예수님의 갈증의 원인 중 “내”가 하나임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나의 영혼을 원하십니다.
– 예수님의 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가상칠언6

“테텔레스타이” – “다 이루었다”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이 말은 상업용어로 “대가가 다 지불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죄로 팔려서 마귀의 종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셨고 그 보혈과 생명으로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우리의 신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몰락한 양반의 자손이 장원급제를 해서 중앙관직에 나가는 것도 큰 신분의 변화인데, 영원한 저주의 신분이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종이 아니라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지를 골로새서 1:24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적용
– 나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오늘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 내가 교회를 위해 당할 수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장 46절

가상칠언7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겸손히 아들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립보서2:6-7). 그리고 그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님의 계획과 주관하에 맡기시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영혼과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절대로 남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 생명의 근본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우리 영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으로 모범을 보이셨지만, 우리가 그런 고백을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이제야 제 정신 차리고 바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부활과 하늘의 영광을 허락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을 우리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로마서 8:11).

※ 적용
–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지 못하는 인생의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만은 하나님이 미덥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내 안에 부활의 소망과 믿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합니까?